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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나름 심각했던 나의 오늘일기/기록 2015. 1. 3. 23:47
최근 생리를 할 때면 우울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상한 것은 그것이 생리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우울증 그 자체로 변해버린 것 같은데 '생리를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우울하기 때문이다. 예정된 기간에 생리가 시작하지 않으면 임신 가능성과 더불어 알 수 없는 짜증과 우울이 밀려온다. 약을 먹으려고 집어들 때, 우주가 놀아달라고 칭얼댈 때, 책을 읽을 때, 게임을 할 때 등 각각 저마다 다른 이유로 짜증이 솟구친다.
약을 먹을라치면 내가 약을 먹어야한다는 사실에 짜증나고 우주가 귀찮게 구는 것이 짜증나고 책을 읽으면 (온갖 짜증 때문에)책이 읽히지가 않아서 짜증나고 게임을 하면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난다. 참 답이 없는 기간이다. 이럴 때면 딱 죽고 싶다. 내가 살아서 숨 쉬고 움직이며 야기하는 모든 활동이 좆같아지는 순간엔 잠조차 잘 수 없을만큼 죽고싶은 것이다.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타서 아름다운 영화 한 편을 보면 괜찮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코아가 없다는 사실부터 화가 나기 시작한다. 이시기에 난 참 구제불능이다. 이 정도면 상담을 받아봐야하지 않나 싶다. 원래의 언제나 긍정적이던 나로 돌아가고 싶다.
오늘은 오후 12시 쯤 일어나 플래시 게임을 조금하다가 때려치고 밥을 먹고 우주랑 놀아주고 시덥지 않은 것들을 하다가 5시쯤 집 근처 카페를 찾았다. <섹슈얼리티 강의, 두번째>를 읽기 위해 찾은 저렴한 카페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주인 아주머니가 티비를 크게 틀어놓고 보고 있었다. 사실 커피 전문점이라기보다는 핫도그나 컵밥도 파는 패스트푸드+커피숍에 가까웠다. 그 분위기 때문에 책 읽기가 조금 망설여졌지만 기왕 들어온데다 가격도 저렴해서 3300원짜리 녹차라떼를 주문하고 책을 읽었다. 텔레비전 소리가 줄어들지 않아서 귀에 이어폰을 꽂아야했다. 그것도 나름대로 집중이 되지 않아 꽤 고생하며 읽었다. 몇 장을 넘기면서부터는 안정적으로 읽을 수 있었는데 마침 무한도전의 토토가가 시작되고 그 잡음이 이어폰을 뚫고 내 귀까지 처들어와 결국 책을 놓게 되었다. 약간 패여진 내 좌석에 더운 공기가 고여서 불편하기도 했다. 불편을 얘기했더니 네 자리만 그런 게 아니라며 되려 핀잔을 듣게 되어서 불쾌하고 답답해서 짐을 챙겨 인사도 없이 나와버렸다. 들어간지 고작 한시간 반만에. 길 건너 다른 카페에서 3500원의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지만 통장 잔고가 없어서 그냥 나와야했다. 비참하고 짜증나는 기분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집에 와서 속이 안 좋아서 조금 토했다. 내가 지불해야 할 비용을 떠올리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하는 일정을 떠올리며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더블로 느꼈다. 정말이지 이 세상에서 로그아웃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