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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하는 타지 생활은 힘들다일기/뒤셀도르프 생활 2015. 5. 10. 17:14
1. 3월 말에 토렌트로 킥애스2를 봤다. 토렌트는 다운로드 동시에 공유이고 독일은 그런 저작권 재배포를 매우 엄격히 대하는 나라였다는 걸 나만 몰랐다ㅎㅎ 킥애스2는 독일에 판권이 넘어온 저작물 목록에 존재했고 (디 아워스, 이지에이, 킬빌, 스킨스도 봤는데 이건 목록에 없었다.) 나는 벌금고지서가 올까말까 불안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오면 오는거고, 아님 마는 거지 하고 생각하기도 잠시 또 죽고 싶을만큼 불안해지고 괴로워지고 자해하고 싶어진다. 왜 난 몰랐을까, 어떻게하면 알 수 있었던 걸까... 하면서.
2. 파리에서는 핸드폰을 도둑맞고 영국에서는 전날 술을 늦게까지 마셔서 아침 일찍 있던 비행기표를 놓쳤다. 다음달 5일에 프랑크 푸르트를 간다. 이번에도 뭔가를 잃어버리고 놓치고 빼앗기지 않을까 너무 무섭다. 나는 완전히 겁먹었다. 겁 먹기 싫은데 바보같아지는 거 너무 싫은데 이 고통을 이겨내기가 너무 힘들다.
3. 그래서 다시 정리하면서 마음을 추스리기로 다잡았다.
- 토렌트 벌금 고지서는 보통 2~3달 안에 온다.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대처할 건지는 이미 정해놨다. 대처법을 수백번은 더 봤다. Abmahnung이 온다면 APW Auffenberg, Petzold & Witte 한테서 올거다. 처음 오는 Unterlassungserklärung에는 절대 사인하면 안된다. 매우 짧은 기간 안에 회신해야 할텐데 변호사 선임 기간이 부족하다면 그냥 등기로 '처음 했었던 일이고 몰랐다, 잘못을 시인하지만 금액이 너무 높다, 나는 가난한 학생 신분이고 부디 합의금을 낮춰달라.'고 작성해서 빨리 회신해버린다. (modifizierte Unterlassungserklärung) 그리고 Amtsgericht에 슈페어콘토 증명서, 거주지 안멜둥, 여권을 갖고 가서 Beratungshilfeschein을 받는다. 이걸 갖고 변호사를 찾아가 위임(Vollmacht)한다.
- 월요일 새벽에 신한은행에 전화해 이체할 수 있도록 본인증명을 한다. 프랑크푸르트 숙소는 월요일에 결정한다. 월드클럽돔 공지사항을 꼼꼼히 읽고 금요일 콘서트는 몇 시에 시작하는거고 World Club Dome에 문의해 나한테 요구되는 'ID'가 뭐냐고 물어본다. 여권(필요하다면) 혹은 여권 사본, 핸드폰, 돈과 카드, 티켓 잘 챙겨서 다닌다. 이번엔 절대로 안 잃어버릴 거다.
- 신한은행에서 넘겨받은 돈으로 어학원 결제하고 베샤이니궁 받고 여권 사진 찍고 모든 서류를 챙긴 뒤 6월 1일에 비자를 받는다. 혹시나 못 받아도 괜찮다. 여권엔 5월 4일 영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되어있다.
- 7월 5일 한국으로 출국하기 2주 전에 거주지 압멜둥을 하고 집에 있는 물건들 늦게받아도 되는 것 배송대행으로 보내버린다. 1주 전에는 은행 계좌를 닫고 남아있는 돈을 여행자수표로 바꾼다.
- 애인님이 말해줬다. 내가 지금 혼자 있고 외국에서 실수해서 크게 느껴지는 거라고, 별 것 아닌 실수들이라고. 잘해내고 있다고. 맞다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고 더 멍청한 짓을 할 수도 있다. 폰 도둑맞은 건 진짜 어이없을 정도로 운이 나빴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다. 비행기 놓친건... 내가 전날 술을 늦게까지 마셔서 잘못하긴 했지만 겨우 영국과 독일 사이 비행기였고 그 정도 실수는 많이들 한다. 여기서 토렌트 다운받다 걸린 사람도 많고, 안 걸린 사람도 많다. 토렌트가 걸린다는 사실을 몰랐던 건 그저 내가 관련지식을 찾아볼 기회가 없었던 불운이다. (물론 불법 다운로드는 이제 안 할거다ㅠㅠ) 다 괜찮을거다. 하지만 여전히 이렇게 또 불안감과 자책감이 몰려들거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된다. 나는 잘 해낼거고, 아직 살아있고, 내가 해내야 할 일들이 최소한 독일어 프레젠테이션은 아니니까. 여권, 핸드폰, 티켓 간수 잘하자. 조심조심, 하지만 당당하게 지내자. 쫄지 말자.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