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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에 온지 일주일이 넘었다.일기/뒤셀도르프 생활 2015. 3. 12. 07:58
처음 뒤셀에 도착하고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한 뒤 다음 날 아침에 찍은 사진. 무서움과 후회와 낯선 세계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진 막막함으로 밤을 지샌 뒤 동이 텄을 때, 호텔 테라스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독일의 풍경이다.
22살(여기 나이로는 만 20살)의 어린 나이에 연고도 없이 불쑥 독일에 와버린 것이 잘했다싶기도 하고 괜히 서둘렀나 싶기도 하고 처음엔 굉장히 좌절스러웠다. 그도 그럴게 나는 해외경험만 처음이 아니라 독립 자체가 처음이라 어떻게 밥 해먹는지, 세탁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건을 어떻게 놓아야 효율적인지 하나하나 다 과제였던 것이다. 심지어 한국에 있는 집은 20년 살면서 항상 동생과 같이 써 왔기 때문에 나만의 공간이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가 아는 지식 안에서 선택해야하는 것이라 너무 위축되었던 것 같다.
어학원을 다닌지 이틀 째에 그러한 감정이 제일 극에 달했었다. 마트에서는 계산도 떨리고 창피하지, 코 이따시만한 독일인들은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지, 청소년들은 낄낄대고 보란 듯이 바보짓하지, 거기다가 어학원 수업까지 한 개도 안들리니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가 싶고 피가 말라붙는 것처럼 불안했다. 어릴 때 마치 부모님이 거실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이 밤이 지나가길 기다렸던 느낌이랄까.
수업 중 오고가는 말들의 6~70%를 못 알아듣고 질문도 답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이히 바이스 니히트'만 반복하던 때, 쉬는 시간에 다른 한국인 분이 나에게 독일 온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었다. '3일이요'라고 하자마자 빵 터지면서 정말 힘들겠다, 고 말해주시는데 '아 이게 당연한건가?'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맞다 독일에 온지 3일 째인데 대체 뭐가 들리겠는가... 2년 전에 압구정의 학원에서 겨우 두 달 배웠던 독일어와는 차원이 다른 발음이었으니. 그래서 난 당장 짐싸서 한국으로 가는 항공편을 사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한 달만 더 버텨보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수업 중 가장 많이 들렸던 리히틱(richtig), 놐말(noch mal), 뷔,보,반,베어(wie,wo,wann,wer) 등등의 단어를 습득하고 난 뒤 그 다음날부터는 수업이 꽤 잘 들렸고, 그 주 남은 요일까지 매우 즐겁게 수업했다. 정말 기복이 컸던 며칠이었다.
그 후엔 유심도 사고 뷰거암트에서 거주지 안멜둥도하고 도이체방크에서 슈페어콘토 만들고 싶다는 테어민도 잡고 그랬다. 독어도 못하고 영어도 못했지만 미리 사전을 검색해서 정말 필요한 단어를 머리에 넣어놓고 어떻게든 설명하면 알아듣더라. 바보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나름 중요하다. 눈을 보고 똑바로 말하며 모르는 단어는 확실히 물어보는 거다. 내가 이해한 게 맞냐고도 어떻게든 물어보면 다시 설명해주고 알려준다. 적어도 '그냥 내가 하라는대로 하면 돼'라는 마인드는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숙소는 어학원을 신청할 때 같이 요청한 숙소인데 어학원에서 겨우 걸어서 5분 거리니까 말이다. 코너를 돌면 금방이고 창문이 어학원 쪽이었다면 아마 학원이 보였을거다. 근데 창문의 위치는 백배천배 이 쪽이 낫다. 낮이면 해가 창을 비춰서 겁나 나른하고 따뜻하기 때문! 점심 먹고 낮잠자기 딱 좋다. 그리고 근처에 마트도 많고 슈트라센 반도 코앞이다. 바바라 아주머니가 나보고 Bless라고 했다. 방도 넉넉하고 예쁘다. 조금 추운 게 단점이지만 독일의 하이쭝은 규제가 있어서 꼭 창문 아래에만 설치되어야한다고 한다. (내 방 하이쭝 자체가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하지만..) 담요와 이불이 있으니 괜찮다. 다만 겨울이었으면 바바라한테 손 좀 봐달라고 했을 것 같다. 그리고 와이파이도 굉장히 약하다. 난 노는 것 외에 단어찾는 것 때문이라도 인터넷을 자주 쓰기 때문에 네트워크 연결은 정말 중요한데 그게 좀 아쉽다ㅠ 이번 주 말까지 와이파이가 제대로 안되면 요구를 해볼 생각이다.
독일은 정말 건물들이 예쁘다. 집도 예쁘고 카페도 레스토랑도 세탁소도 예쁘다. 그게 엄청 모던한 디자인이라거나 고급스런 앤틱함으로 예쁜 게 아니라 모든 것이 나름의 편리함과 불편함을 챙기고 감수하면서 예쁜 듯한 느낌이다. 다른 말로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묘하게 배합되었다는 뜻이다. 뒤셀도르프의 풍경은 꼭 내가 과거에 사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한국에 있을 때 수도권에 거주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식료품은 1,00유로도 안되는 가격이 허다하고 중앙역 근처에도 나무와 숲, 빈 공간이 적당하며 모든 상점은 저녁 8시 전후엔 다 닫는다. 슈트라센 반에 타기 위해선 티켓 머신에서 적절한 티켓을 사면 되는데, 슈트라센 반 내부의 빨간 기계에 티켓을 넣으면 찰캉 소리가 나며 무슨 코드가 찍힌다. 겁나 아날로그스럽다... 근데 슈트라센 반도 무척 깔끔하고 어떤 식당을 가도 깨끗하고 말끔해서 한편으론 또 무척 세련되었다고 느끼는 거다.
1. 유심 : 3월 2일 빌크S에 있는 티모바일 텔레콤 통신사 지점에서 선불유심칩(prepaid sim karte)을 구매했다. XTRA 어쩌구인데 9,95 유로 짜리다. 한 달 250MB고 마트에서나 인터넷에서 충전해서 쓸 수 있다. 내가 그 다음날 15유로를 충전했는데 *100#을 눌러 통화하니 기존에 있던 금액과 더해져 20,05 유로가 들어왔다. 근데 아직까지 미스테리인 건 데이터를 30메가 넘게 사용했는데도 매번 저 번호로 걸어 확인할 때마다 20,05 유로가 남았다고 뜨는거다. (...) 뭐 핸드폰 자체에서 데이터를 얼마 썼는지 알려주니까 아직 걱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다 ;ㅅ;
2. 거주지 신고 : 빌크S에 건물 오른쪽 면에 있는 문으로 들어와 Bürgerbüro라고 쓰여진 3층에 내리면 안멜둥 할 수 있는 사무실이 나온다. 들어가서 알맞은 분야를 선택하고 번호표 뽑으니 30분 후에 들어가는 걸로 되어있길래 Real이라는 맞은 편의 짱큰 마트에서 잠시 쇼핑하고 왔다. 나한테 여권과 집주인, 어학원의 베샤이궁을 요구하고, 독일에 얼마나 있을 거고, 결혼은 했는지, 종교는 있는지, 태어난 도시와 살고 있던 도시 정도를 묻더니 금방 끝나고 관련 서류를 준다음 ㅃㅃ했다. 생각보다 순조로워서 놀랐다.
3. 콘토 만들기 : 거주지 신고를 마치지마자 받은 서류를 그대로 들고 빌크S 근처에 있는 도이치방크로 향했다. 5개월치 슈페어콘토 만들고 싶다고 하니까 테어민을 그 다음 주 화요일 오후 12시로 잡아줬고, 당일 여권과 어학원 베샤이궁, 집주인 베샤이궁, 안멜둥한 것, 5개월치 슈페어할 현금을 들고 찾아갔다. 많은 유학생들이 그렇더라했지만 슈페어콘토에 대해 잘 모르는 은행 직원들이 많은 것 같다. 날 담당한 직원은 무척 친절하고 날 위해 천천히 얘기해줘서 좋았는데, 슈페어콘토를 전혀 몰랐는지 내가 한 달에 670 묶고 5개월 사용하고 싶다고 하니까 누구한테 물은거냐, 친구들한테 들은거냐, 하다가 그렇다 그런데 외국인청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한다. 유학생들 다 비자받기 위해 그렇게 한다,하니 그제서 슈페어콘토를 만들기 시작하더라... ㅇㅅㅇ? 난 처음부터 슈페어콘토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여튼 무리 없이 슈페어콘토도 잘 만들었다. 사인할 것과 확인할 것이 많아서 1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제 카드와 핀코드만 받으면 된당.
4. 비자 테어민 : 비자 테어민 날짜가 굉장히 늦게 잡힌다는 말을 듣고 콘토도 만들기 전에 우선 외국인청에 가 비자 테어민을 신청했다. 외국인청은 중앙역 뒷 건물에 있었다. 여권 보여주고 나머지는 암것도 안 보여주고 우선 테어민 날짜랑 내가 가져와야할 서류가 적힌 종이, 적어와야할 양식 종이를 줬는데 놀란 건 내 무비자 3개월 체류일을 넘는 6월 1일에 테어민이 잡혔다는 것 ㅇ0ㅇ 하지만 걱정하지 말랬으니 걱정 안 하기로 했다. 비자는 이제부터 천천히 준비해나가야겠다. 비자만들 여권 사진을 깜빡하고 놓고와서 아마 여기서 찍어야할 판이당.
아 어학원 숙제랑 테스트 해야하는데 귀찮다. 더 중요한 테스트만 하고 자야겠다. Gute Nacht, Tschü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