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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빈에 대하여, 2011
    덕질/영상 2014. 5. 7. 01:51



      얼마 전에 <역린>을 봐서 그런지 이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영화에 무척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역린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서사가 깔쌈한 영화는 정말이지 내 취향이다. 몇달 전부터 구해놓고 사정상 감상하기를 미뤘던 영화였는데 마침 저녁먹는 김에 틀어놓는다는 게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상을 못 치웠다...




      영화 제목은 <케빈에 대하여>이지만 나는 틸다 스윈튼이 연기하는 에바, 즉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에바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임신을 하고 아들 케빈을 낳는다. 유아 때부터 청소년이 될 때까지 케빈은 에바에게 무조건적인 반항과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녀는 그런 그를 올바르게 교육해보려하지만 결국엔 케빈에게 익숙해지고, 그가 학교에서 저지른 참사를 고스란히 그녀가 떠 안고 산다는 것이 주요 이야기인 것 같다. 

      케빈을 뱃속에 가질 때부터 그녀는 다른 임신한 여자들과 다른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케빈에게 원래 자신은 프랑스를 가고 싶었다고 말하는 모습이나 동양 음악을 즐겨듣거나 동양풍 건물 사진을 아끼는 모습, 자신의 방 벽지를 지도로 꽉 채우는 모습에서 보았을 때 에바는 결혼에 의한 정착이 아니라 여행을 꿈꾸는 여자였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 방에 서서 이것이 자신의 Personality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에바는 애초에 케빈의 탄생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나 이것이 케빈이 '악'을 품는 필연적인 계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말도 잘 못하는 어린 케빈에게 '나는 원래 프랑스를 가고 싶었어'라는 말 한 마디가 후에 그녀가 베푸는 모성을 거부할만한 근거가 되기엔 지나치게 가벼운 듯. 케빈의 악은 어머니 에바가 제공한 것이 절대 아니고 태생적으로 갖고 태어났을 거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케빈은 무조건적으로 에바의 사랑과 보살핌을 거부하고 공격하며 무시한다. 혹자는 동생 실리아가 태어나면서 모든 관심이 그녀에게 뺏겨버려 케빈이 악이 정점을 찍게된다고, 그래서 케빈은 사실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하는데 난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실리아가 태어나기 전에도 케빈은 에바의 사랑을 거부했으며 실리아가 태어난 후에도 아버지에게는 관심을 듬뿍받았다. 에바한테도 그것이 모자라다곤 할 수 없다.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따로 저녁을 먹는 등 관계 개선을 위해 여러 시도를 했으니까) 케빈은 그저 근원적으로 어머니인 에바를 거부하고 혐오하며 공격할 수 밖에 없는 무언가를 품고 태어난 것 같다. 그러나 왜 그런 심리가 학교 아이들한테까지 향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왜 자신을 사랑해주는 아버지와 착한 여동생 실리아까지 죽여버린건지도. 

      에바는 소년원에 구속된 케빈을 자주 찾아온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 쯤, 에바는 그에게 '도대체 왜 그런 것이냐'고 묻고 케빈은 '예전엔 아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독기가 찬 눈으로 '당신을 닮았기 때문이지'라고 말했던 과거의 그와 달리 다소 누그러진 얼굴로 '이제는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케빈이 품었던 '절대악'을 표현하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그 대답을 들은 후 에바가 그를 안아준 것은, 그리고 케빈이 아무말 없이 에바에게 안긴 것은, 비로소 에바에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아야할까? 나는 사실 이 결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설명이 있지 않는 이상 그저 '훈훈함'으로 마무리하려는 시도는 쌩뚱맞다고 해야하나, 여튼 그런 의미가 아니길 바란다.




      <케빈에 대하여>를 영화를 보다보면 자꾸만 붉은색을 보여주려고 하는 게 느껴진다. 붉은색으로 표현되었던 것은 영화 초반에 에바가 뛰어노는 스페인의 토마토축제, 에바의 집과 자동차에 뿌려진 붉은 페인트, 붉은 공, 붉은 곰인형, 토마토수프 캔들 등등 아주 사소한 소품까지 장면마다 빠지지않고 존재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통일성있게 주제를 끌고가는 노력이 엿보이는 것 같다. 또 붉은 것들을 찾아내면서 혼자 즐겁기도 하고ㅎㅎ 

      서사 방식도 참 친절하고 근사했다. 과거의 에바(매우 짧은 커트)와 현재의 에바(보다 좀 더 긴 커트)를 교차하며 보여주는데 "케빈과 에바 사이에 갈등이 싹트시 시작하는 과거"와 "이웃 사람들에게 갖은 공격과 비난을 받는 현재의 에바"를 에바의 회상 형식으로 오고가면서 그 사이에 일어난 공백의 사건을 관객들로 하여금 무척이나 궁금하게 하는 것이 좋은 흐름인 것 같았고 그 점에서 보는 내내 만족스러웠다. 보는 내내 '그래서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걸까? 혹시?'하면서 여러가지 추측하게 하고 영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감독의 능력에 혀를 내두른 듯. 이런 영화 또 보고싶다. 진짜 재밌다. 




      또 하나 칭찬하고 싶은 것은 과거와 현재의 장면 사이를 이어주는 장면의 구조다. 영화에서는 위와 같은 식으로 인물을 제외한 배경만을 현재 혹은 과거로 교환하면서 화면을 바꾸는 동시에 연결된 서사를 표현한다. 다른 영상에서도 종종 쓰이는 방법이겠지만 <케빈에 대하여>에서는 보다 노골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것 같아 좋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자꾸 무척 좋아하는 영화인 <블랙 스완>이 생각났다. 드러나는 공통점은 별로 없지만 '악'을 주제로 절정까지 이끌어간다는 것과 단순 명료한 서사방식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듯. <케빈에 대하여>를 보면서 영화 취향을 조금 더 정리하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 절대악의 탄생과 그의 어머니의 역할은 공존할 수 있는가,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서사를 풀어야 몰입과 긴장감을 거머쥐는가? 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해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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