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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July. 2015
    일기/기록 2015. 7. 19. 18:30

    오후 세시, 도서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과 考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빌려왔다. 답답할 정도로 날씨가 더웠는데 왜인지 뱃속이 차가워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가 금방 먹기 싫어졌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나는 원래 알던 그것과 대체되곤해서 독일에 지낼 당시엔 영어를 많이 잊어버렸고 영국에 놀러갈 당시엔 독일어를 많이 잊어버렸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 독일어 회화를 빠르게 잊어버리고 있는 중에 한국어로 된 산문도 읽게 된 마당이니 더 빠르게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독일에서 지낸 4개월하고 1주 동안 나에게 드라마틱한 경험이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그 곳에서 입학을 준비한 것도 아니고 탄뎀 파트너를 만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난 여행을 한 것도 아니고 독일어 어학원을 다니며 내 미래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지 모를 언어를 출처 없는 의지로 성실하게 배우고 온 것이 다였기 때문이다. 아니다. 다라고 하기엔 그 곳에서 사귄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적지 않은 친구들도 사귀긴하였다.


    왜 독일로 떠나느냐? 왜 하필 독일이냐? 그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이 모든 질문에 나는 답을 내리지 못한 채로 비행기를 탔었다. 굳이 답을 했다고 한다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우선 한국은 떠나보고 싶어요'였겠다. 답은 거기서 찾으면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미래의 나에게 전가하는 책임이었다. 그리고 보기좋게 멘붕했다. 역시 애매한 결심은 애매한 결과를 도출하는 법이다. 


    애매한 결과라고 성과마저 애매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객관적으로 볼 때 누군가 동의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고 중요하지도 않지만, 나에겐 이러한 애매한 결과가 나름의 실험 과정이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나의 미래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실험적 결과를 나열한다면 이렇다.

    1. 내가 독일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싶은지 아닌지 실험한 결과 : 난 독일에 체류하는 동안 작품을 만들지 않았고 독일 미술대학에 원서를 넣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2. 내가 독일어에 흥미나 계속 배울만한 재능이 있는지에 실험한 결과 : 독일어에 흥미가 있다고 말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그러나 4개월동안 한 번도 테스트에 떨어지지 않고 B1.1까지 착실히 단계를 밟아올라왔다는 것은 유의미하다. 

    3. 독일에서 내가 적응했는지에 대한 실험 결과 : 독일에서 살면서 적응하지 못한 것은 '동양여성'이라는 외부인적 굴레와 여성으로써 느껴야하는 추파였다. 3시간에 한 번 정도는 듣게 되는 곤니치와, 니하오같은 말이 엄청난 스트레스까진 아니지만 당연히 유쾌하지 못하다. 백인들 사이에서 홀로 서 있는 동양인인 나를 느낄 때 그 위화감은 아마 몇 년이 지나도 익숙해지기 힘들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애인과 떨어져있는 것도 3개월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최소화한 적응' 면에서는 다른 조건이 더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결과적으로는 여행이 아닌 유학의 목적으로 독일에 장기체류할 계획은 지금으로썬 사실상 '없다'는 것.


    그래서 책을 읽을 때 느낄 일종의 허무함도 이 글로 같이 털어버렸으면 좋겠다. 털어버릴 거다. 

    독일에서 지내면서 잔걱정이 잔뜩 늘었다. 스트레스와 불안감도 많이 늘었다. 지인 일부는 정신과 상담을 추천했을 정도였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러 방식으로 잔걱정이 존재한다. 떠나면 떠나는대로, 돌아오면 돌아오는 대로 과거와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애인님이 잘 도와주고 있으니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괜찮아지는데에도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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