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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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가 되지 않기로 했다.일기/사유 2018. 1. 29. 03:15
아무도 궁금하지 않을 이야기겠지만 나 어렸을 땐 말이야.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되나보다. 나 스스로 참 꺼렸던 말인데, 이제는 자연스레 꺼내게 된다. 난 나 스스로를 또래보다 예민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좋게 말하자면, '인권감수성'이 높은 아이. 혼자 집회도 쫄래쫄래 가고, 길거리에서 서명 운동을 하면 꼭 하고, 누구와 키보드 워리어짓을 하게 되면 한 쪽이 끝장날 때까지 했다. 그 시기 나를 지배했던 생각은 '올바른 사람이 되고 싶다'였다. 언제 한 번 아빠가 내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었을 때 고민 끝에 한 대답이었다. 나는 나와 이야기가 통하는 또래 친구들에게 내가 믿고 옳다고 생각하는 사상에 대해 알려주기를 좋아했다. 그렇게 하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 믿었고, 친구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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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성이 드러내는 여성성에 대해 보수적인가?일기/사유 2014. 7. 14. 18:06
얼마 전 나는 효민의 'Nice Body'는 남성을 위해 여성이 스스로의 몸을 기꺼이 상품화, 성적 대상화 해야하고,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 예쁘지 않는 여성은 '야한 것을 좋아하는 남자'들에게 선택되지 못하기 때문에 보다 열등하다는 불쾌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식의 글을 올린 적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어떤 만남에서 들은 말이 내 뒷통수를 때려서 아직도 그 얼얼함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나는 분명 저 불쾌한 노래를 까면서 '여성이 선택받기 위해 가꾸어야만 한다는 인식은 잘못됐다'와 더불어 여성에게 요구되는 여성성의 해방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정작 남성에게 요구되는 남성성의 해방은 말로만 떠들었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남성이 드러내는 여성성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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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6. 19. "연애의 관습"일기/사유 2014. 6. 19. 17:12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먹고 먹히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기'로 상대와 나의 먹이사슬을 정리한 후 막대할지 막대해질지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어릴 때부터 내가 내린 분류 안에서 기가 약하고 찌질한 부류에 속했던 나는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동경하며 '나도 기가 쎄졌으면 좋겠다'하고 염원하곤 했다. 행동 하나하나가 어색하지 않고 맵시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날라리 부류에 속하는 아이들과 대화할 때도 기죽지 않으려 나름 노력했다. 어찌 말하면 '허세'와 '뻔뻔함'을 기르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21년을 살아내고 보니 결국 기쎈 척하는 것이 몸에 배어버렸다. 누구와의 관계에서 내가 불리한 입장에 처하거나, 내가 더 감정 소모를 해야하거나, 한심해지게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같은 맥락으로 ..